서강대 앞을 지나는 경의선숲길은 꽤 길다. 옛 철길을 걷어낸 자리라 폭은 좁고 길이만 계속 이어진다. 그 긴 길에서 내가 제일 자주 되돌아가는 데는 딱 한 구간, 대흥역 바로 아래쪽 소나무 구간이다.
왜 하필 이 구간인가
경의선숲길 대부분은 평평하다. 철길 자리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대흥역 아래 이 구간만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 그리고 그 경사 위로 키 큰 적송들이 서 있다.

나무 높이가 상당하다. 고개를 젖혀야 위쪽 가지가 보인다. 붉은 기가 도는 곧은 줄기가 위로 쭉 올라가다가 한참 높은 데서야 가지를 펼친다. 그 아래로는 낮은 풀이 촘촘히 깔려 있어서, 위는 시원하게 트이고 아래는 빽빽한 이층 구조가 된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밀도의 소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다.
바로 옆에 아파트가 붙어 있는 것도 이 길의 성격이다. 나무 사이로 발코니가 그대로 보인다. 산속에 들어온 척하는 길이 아니라, 아파트와 상가 사이에 억지로 끼워 넣은 초록이라는 게 감춰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싫지 않다.
오르막이 만드는 두 가지 길

경사가 아주 급하진 않다. 그래서 마음먹기에 따라 길이 두 개가 된다.
뛰면 바로 운동이 된다. 짧은 구간인데도 오르막이라 금세 숨이 찬다. 평지에서 같은 거리를 달리는 것과 체감이 완전히 다르다. 반대로 천천히 걸으면 한없이 느긋해진다. 바람이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게 느껴지고, 앞서 걷는 사람들 걸음이 다 비슷하게 느려진다. 사진 속 사람들도 다들 그 속도다. 급한 사람이 없다.
길가에는 앉을 자리도 있다. 힘들면 앉았다 가면 된다. 나는 이 점을 꽤 높이 산다. 산책길에 벤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길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결정한다.
여름에 진가가 드러난다

이 구간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여름이다. 한낮에도 해가 거의 들지 않는다. 잎이 겹겹이 덮여 있어서 바닥에 얼룩덜룩한 그늘만 떨어진다. 서울 한여름에 양산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 그렇게 많지 않다.
기온이 실제로 몇 도나 낮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무 그늘로 들어서는 순간 확실히 달라진다는 건 여러 번 겪었다. 땀이 식는 속도가 다르다.
서강대에서 10분

서강대에서 걸어서 10분쯤이면 닿는다. 마음먹고 가는 거리가 아니라 수업 사이나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나는 그래서 자주 간다.
숲길을 벗어나면 바로 차도와 상가 간판이 나온다. 그 경계가 뚜렷해서 오히려 좋다. 몇 분 전까지 소나무 아래였는데 지금은 신호등 앞이다. 짧게 딴 데 다녀온 기분이 든다.
거창한 코스는 아니다. 한 번에 다 걸어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동네에 이런 길이 하나 있으면 하루가 달라진다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