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체육관 앞이다.
한눈에 봐도 세월이 묻어 있는 건물이다. 흰 콘크리트 외벽에는 비 자국인지 얼룩인지 모를 것들이 번져 있고, 위쪽으로는 세로로 긴 타원형 창들이 두 줄로 죽 이어진다. 요즘 건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창 모양이다. 지어질 당시에는 꽤 멋을 부린 디자인이었을 텐데, 지금 보면 그 시절 특유의 고집 같은 게 느껴진다. 아래쪽 벽은 노르스름한 타일로 마감돼 있고, 그 앞을 소나무 몇 그루와 둥글게 다듬은 관목들이 가리고 섰다.

학교에서 제일 큰 방
낡았어도 이 건물의 쓰임새는 꽤 넓다. 서강대 안에서 지붕 덮인 공간 중 가장 크기 때문이다. 크다는 건 곧 사람을 제일 많이 담을 수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학교의 굵직한 순간들이 다 여기로 모인다.
입학식이 그렇고, 졸업식이 그렇다. 처음 학교에 발 들이는 날과 학교를 떠나는 날, 두 번 다 이 체육관 바닥을 밟게 된다. 4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자리에 두 번 앉는 셈이다. 그 사이에도 큰 행사가 있으면 어김없이 이곳이 쓰인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건물인데, 행사날이 되면 정문 쪽부터 사람들이 줄줄이 이쪽으로 걸어 올라온다.
사진 뒤편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는 게 보인다. 체육관 흰 벽과 나란히 놓이니 두 건물의 색 대비가 꽤 선명하다. 건물 앞에는 우리은행 ATM 부스가 하나 놓여 있고, 라바콘 몇 개가 줄지어 서서 차가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
B1이라 적힌 쪽문
체육관의 진짜 일상은 오히려 옆구리에 있다. 건물 옆으로 돌아가면 회색 철문 하나가 나온다. 문 위쪽에 ‘B1’이라고 적힌 작은 표지판이 붙어 있고, 옆 벽에는 ‘체육관’이라고 쓴 게시판이 걸려 있다.

문 유리에는 ‘체육관 부대시설 개방시간’을 적은 안내문이 테이프로 붙어 있다. 옆 벽에는 카드 단말기가 위아래로 두 개 달려 있어서, 학생증을 대고 들어가는 구조다. 게시판에는 시간표처럼 생긴 종이 한 장이 덜렁 붙어 있고, 그 아래로는 도면 같은 게 두 장 붙어 있다. 꾸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문인데, 이 문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탁구장이 있다. 스쿼시장도 있고, 체력단련실도 있다. 공강이 붕 떠서 갈 데가 마땅치 않은 오후, 혹은 주말에 학교에 나온 김에 몸이라도 풀고 싶은 날. 학생들은 이 문으로 들어간다. 도서관에 앉아 있기는 답답하고 그렇다고 학교 밖으로 나가기는 애매할 때, 지하 탁구장에서 라켓 소리를 내며 한 시간 보내는 건 생각보다 훌륭한 선택이다. 돈도 안 들고, 땀도 나고, 수업 시간에 딱 맞춰 올라오면 된다.
문 옆 화단에는 잎이 뾰족한 유카 같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그 앞을 낮은 철제 울타리가 두르고 있다. 오래된 건물 옆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 같은데, 그 무심한 풍경이 오히려 학교 같다.
옆에 선 새 건물
체육관 옆으로는 GN관이 붙어 있다. 두 건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시간 차가 확 드러난다.

이쪽은 회색 석재로 각 잡아 마감한 건물이다. 창은 네모반듯하게 리듬을 타며 배치돼 있고, 아래층은 짙은 색 돌로 눌러 놨다. 체육관의 얼룩진 흰 벽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다. 오른쪽으로는 K관도 보인다.
건물 사이 길에는 차들이 양쪽으로 빼곡히 세워져 있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한 줄씩, 가운데 길만 겨우 남겨 두고 주차가 꽉 찼다. 길 오른편에는 은행나무가 우거져서 오후 그늘을 만들어 준다. 저 멀리 길 끝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학생 둘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그 너머로는 아파트 단지가 흐릿하게 걸쳐 있다.
낡은 게 나쁜 건 아니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새로 지은 건물에 눈이 먼저 간다. 반듯하고 깔끔하니까. 그런데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담아 온 건 저 낡은 흰 건물이다. 입학식도 졸업식도, 공강 시간 탁구도 전부 여기서 벌어진다.
건물은 얼룩덜룩해졌어도 하는 일은 그대로다. 새 건물이 옆에 몇 개 더 서더라도 이 자리는 아마 한동안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학교에서 제일 큰 방이 필요한 날은 계속 돌아올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