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정문은 쉽게 눈에 띄는 문이 아니다. 신촌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 화강암 기둥 몇 개가 서 있는 자리가 정문이다. 길 건너편에서 처음 봤을 때는 저게 정문인가 싶어 한 번 더 확인했다. 높은 아치도 없고, 금박 현판도 없다.

대신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왼쪽 언덕 위 유리 건물에 붙은 ‘서강대학교 SOGANG UNIVERSITY’ 간판이고, 오른쪽으로는 공연 포스터가 붙은 커다란 게시판이다. 그날 게시판에는 붉은 바탕에 ‘CARDINAL’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9월 중순 축제 안내였던 모양이다. 문보다 포스터가 더 큰 셈인데, 그게 이 학교 정문의 성격을 오히려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문주가 아니라 기둥
가까이 가면 문의 생김새가 분명해진다. 화강암 덩어리를 쌓아 올린 기둥이 양쪽에 서 있고, 기둥마다 사각으로 구멍을 뚫어 놨다. 장식이라기보다는 형태 그 자체로 승부를 보는 방식이다. 오른쪽 기둥에는 붉은 방패 모양 교표가 붙어 있고, 그 아래로 ‘서 강 대 학 교’ 다섯 글자가 세로로 내려온다.

글씨체가 손글씨에 가깝다. 반듯한 명조체가 아니라 붓으로 쓴 듯 기울어진 획이다. 돌기둥의 각진 느낌과 이 글씨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교표 속 ‘IHS’ 세 글자는 예수회 학교라는 표시다. 이 학교가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굳이 설명문을 붙이지 않고 방패 하나로 끝낸 것도 정문의 태도와 맞물린다.
기둥 옆에는 청록색 철문이 접혀 있다. 평소에는 이렇게 열어둔 채로 벽에 붙어 있고, 원 무늬를 넣은 살대가 촘촘하게 박혀 있다. 아랫부분에는 녹이 배어 나와 세월이 보인다. 철문 너머 왼쪽으로는 고층 아파트가 바로 붙어 있어서, 캠퍼스와 동네의 경계가 문 하나 두께라는 게 실감난다.

들어서면 바로 갈라지는 길
문을 통과하면 길이 곧장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오르막이고 오른쪽은 완만하게 안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정면 저 끝에 뾰족한 탑 하나가 서 있다.

알바트로스탑이다. 오벨리스크처럼 위로 좁아지는 형태인데, 문에서 정확히 정면으로 보이도록 자리를 잡았다. 탑 아래로는 계단이 넓게 퍼져 내려오고 그 앞에 화분이 일렬로 놓여 있다. 그리고 탑 너머로 가로로 긴 흰 건물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본관이다. 문 – 탑 – 본관이 한 축 위에 놓여 있어서, 정문에 서면 캠퍼스의 뼈대가 한 번에 읽힌다. 문 자체는 수수한데 문이 잡아주는 풍경은 꽤 계산적이다.

조금 옆으로 비켜서면 기둥과 탑, 그리고 언덕 위 유리 건물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문 옆에는 시계탑이 서 있는데, 둥근 시계 두 개가 양쪽을 향해 달린 흔한 캠퍼스 시계다. 수업 시간에 쫓겨 뛰어 올라가는 학생들에게는 이 시계가 문보다 훨씬 자주 눈에 들어올 것이다.
흰 건물과 옆으로 난 문
정문 오른쪽 안쪽으로는 흰색 건물이 언덕을 등지고 서 있다. 옥상에 나무를 심어놨고, 벽면에는 다시 붉은 교표와 ‘서강대학교’ 세로 글씨가 크게 붙어 있다. 정문 기둥에 붙은 것과 같은 조합인데 크기만 훨씬 키운 셈이다.

이쪽에도 청록색 철문과 횡단보도가 있다. 가로로 크게 쓰인 노면 표시, 세워진 라바콘, 정문 배너가 걸린 가로등까지, 캠퍼스 초입이라기보다는 동네 큰길 한 귀퉁이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이 앞을 지나는 사람들 중에는 학생이 아닌 동네 주민도 많아 보였다.

조금 더 물러나서 보면 흰 건물과 유리 건물이 나란히 언덕 위에 얹혀 있다. 그 아래로 현수막이 줄줄이 걸려 있었는데, ‘2026 서강 지속가능 캠퍼스 AI 영상 공모전’ 같은 문구가 보였다. 캠퍼스 초입은 어디나 이런 현수막의 자리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나무 그늘
정문에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 이 문의 진짜 매력이다. 왕복 2차선 도로 왼쪽으로 보도가 나 있고, 그 위를 느티나무가 완전히 덮고 있다. 9월인데도 잎이 빽빽해서 하늘이 거의 안 보인다.

보도 옆으로는 동아리 홍보 현수막이 쭉 걸려 있다. ‘함께 살아갈 권리’라고 적힌 파란 현수막, QR 코드가 붙은 안내판들. 길 끝에는 차단기가 내려와 있고 파란 지붕을 씌운 정류장 같은 구조물이 보인다.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이 그늘 아래로, 차는 옆 차도로 각자 간다.
문이 소박한 건 아마 이 길 때문일 것이다. 문이 화려했다면 사람들 시선이 거기서 멈췄을 텐데, 기둥 몇 개로 끝내놓으니 눈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넘어간다. 탑으로, 본관으로, 그리고 나무 그늘로. 문은 문지방 역할만 하고 물러서는 셈이다.
다시 신촌로로 나와 건너편에서 정문을 봤다. 흐린 날이라 하늘은 잿빛이었고, 신호등 초록불이 9초 남아 깜빡이고 있었다. 사람 몇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문 안쪽 그늘로 사라졌다. 그게 이 문을 가장 잘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