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관과 본관 사이에 작은 통로가 있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수없이 지나는 길이다. 서강대를 다녔다면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이름만 들으면 제법 가파르고 탁 트인 언덕이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건물 아래를 통과하는 짧은 계단길이다. 베이지색 타일 벽과 바위 사이로 난 길 끝에 캠퍼스가 열린다. 도서관에 갈 때도,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도 나는 늘 이곳을 지났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제목을 빌려 붙인 별명이다. 이 작은 길목에는 꽤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다른 곳에서는 바람이 잠잠하다가도 여기에 들어서면 유난히 세차게 불어닥치곤 했으니까.
사진 속 풍경은 그저 고요해 보인다. 창문 옆으로 덩굴이 뻗어 있고, 통로 너머에는 초록빛 대나무가 무성하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곳에는 늘 바람이 함께 있다. 벽과 계단을 보고 있으면, 이 짧은 구간을 지날 때 느꼈던 바람부터 생각난다.

대학 시절에는 이 길을 따로 감상할 일이 별로 없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거나, 그곳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목적지는 늘 통로 너머에 있었고, 여기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짧은 길목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도서관에 드나들던 일상과 오가던 발걸음이 함께 떠오른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장소가 아니어도, 자주 지나던 길에는 그때의 생활이 남는 모양이다.
사진을 보다가 혼자 이름을 되뇌어 본다. 폭풍의 언덕. 작은 통로에 붙은 거창한 별명이 여전히 정겹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