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이니 이 사이트가 어디를 걷는 곳인지부터 적어 둔다.
다루는 곳은 두 가지다. 서강대학교의 교정 안, 그리고 정문에서 걸어서 40분 안에 닿는 둘레다. 이 둘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같은 지형 위에 얹혀 있다. 교정 안의 계단이 끝나는 자리에서 동네의 경사가 시작되고, 그 경사가 다 풀리는 자리에서 강이 나온다.
머릿속에 네 겹으로 넣어 두면 길을 잃지 않는다.
첫 겹 — 교정, 언덕 위에 층층이
서강대 교정은 평지에 놓여 있지 않다. 정문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오르막이 시작되고, 건물들은 그 경사를 계단처럼 나눠 앉아 있다. 그래서 교정 안을 다니는 일은 층을 오르내리는 일에 가깝다.
이 구조가 만드는 것이 있다. 시야가 갑자기 열렸다 닫힌다. 계단 하나를 올라서면 건물 사이로 먼 데가 보이고, 몇 걸음 더 가면 다시 닫힌다. 교정 안에서 볼 만한 자리는 대개 그 ‘열리는 지점’에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 지점을 몇 군데만 기억해 두면, 교정이 ‘오르막’이 아니라 ‘전망 몇 개를 잇는 길’이 된다.
교정은 학교의 공간이다. 외부인의 출입 가능 여부와 조건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므로 학교의 공식 안내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다. 이 사이트의 글은 방문 당시의 관찰일 뿐이다.
둘째 겹 — 정문, 안과 밖의 경계
정문은 지나가는 자리라 서 있기 나쁘다. 그런데 길 하나 건너면 그림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까이서는 문과 사람만 보이던 것이, 건너편에서는 문 뒤의 경사가 통째로 보인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정 전체가 한 화면에 들어오는, 몇 안 되는 자리다.
셋째 겹 — 옛 철길
정문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경의선 지상 구간을 공원으로 바꾼 길이 지난다. 철길이던 자리라 거의 평지이고 거의 직선이다. 교정의 계단을 다 내려온 다리로 걷기에는 이만한 구간이 없다. 아침에는 출근하는 사람의 통로이고, 낮에는 유모차와 개가 지나가고, 밤에는 조명이 닿는 자리와 닿지 않는 자리가 뚜렷하게 갈린다. 같은 구간을 세 번 다른 시간에 걸어 보면 세 개의 다른 길처럼 느껴진다.
넷째 겹 — 강
숲길에서 더 내려가면 지형이 한 번 더 꺾이고, 그 끝에 한강이 있다. 서강대교가 강을 가로지르고, 다리 아래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섬인 밤섬이 있다. 철새가 머무는 곳이라 출입이 통제되고, 그래서 가까이 있지만 갈 수 없는 풍경이 만들어진다.
앞의 세 겹과 빛의 성질이 다르다. 교정과 골목과 숲길은 건물과 나무가 빛을 잘라 놓지만, 강가에서는 빛이 통째로 온다. 해가 낮게 걸리는 시간에 그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 다만 다리 위는 바람과 차 소음이 세다. 오래 서 있을 것을 전제로 준비하는 편이 좋다.
한 번에 이어 걸을 수 있는가
걸을 수 있다. 교정 위쪽에서 출발해 정문으로 내려오고, 숲길을 지나 골목으로 빠져 강까지 가는 방향은 대체로 내리막이라 생각보다 힘이 덜 든다. 반대로 강에서 교정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지막에 언덕과 계단이 남아 있어 체감이 전혀 다르다. 왕복으로 계획하고 있다면 돌아올 때 한 구간은 대중교통을 타는 쪽을 권한다.
이 사이트가 적는 방식
가게 이름은 원칙적으로 적지 않는다. 이 동네는 가게가 자주 바뀌어서, 가게를 기준으로 쓴 글은 반년이면 틀린 정보가 된다. 대신 길·계단·언덕처럼 잘 바뀌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적는다.
좋았던 것만 적지도 않는다. 좋은 풍경도 시간을 잘못 고르면 그냥 오르막이다. 그래서 모든 글에 ‘언제 가면 실망하기 쉬운가’를 넣는다. 자세한 기준은 편집 방침에 정리해 두었다.
어떤 사람에게 맞지 않는가
맛집 목록이나 코스 요약만 빠르게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여기 글은 걸으면서 걸린 지점을 그대로 적기 때문에 대체로 길다.
총평
매일 지나면서도 한 번도 서서 본 적 없는 자리가 교정 안에도, 정문 밖에도 많다. 그 자리를 하나씩 줄여 보려고 만든 곳이다.
